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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의 겨울은 유독 추웠다. 그렇다고 에르나스의 겨울이 춥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 추위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한동안 에르나스에 머물렀다고 그새 익숙해진 탓인지 바람에 닿는 살갗이 쓰라렸다. 길게 뻗은 귀가 빨갛게 익는 듯한 모양새로 얼어갔다.

 

 

 

옷의 부피가 늘어나면 움직임이 둔해지기에 추운 날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임무를 수행하는데 춥고 덥고가 어딨겠냐마는, 기왕이면 조금 더 편한 쪽이 좋은 건 당연했다. 유난히 시린 겨울바람을 맞으며 루퍼스는 집으로 향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몸은 물먹은 솜마냥 무거웠지만, 걸음을 늦추지는 않았다. 배가 잔뜩 부른 혁대 위 주머니 속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집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루퍼스는 걸음을 멈췄다. 가늘게 떠진 눈가 위 미간이 찌풀거리며 좁혀들었다. 사람이 있을 리 없는 집 안에 불이 켜져 있다. 그렇잖아도 루퍼스를 불편해하는 마을 사람들이 집 안에 발을 들였을 리 없다. 그렇다면 누가 저렇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행동을 한 거지. 임무 후, 가뜩이나 예민한 상태인 루퍼스의 신경이 곤두섰다.

 

 

 

집에 가까워짐에 따라 루퍼스의 손이 본능적으로 아이투스 위로 얹어졌다. 딱히 원한 살 만할 일을 한 기억이, …물론 많지만. 끼이익.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버벅거리는 문이 음울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양손에 아이투스를 쥔 루퍼스가 언제든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손가락을 걸었다.

 

 

 

"하…."

 

 

 

온 신경을 시각과 청각으로 기울인 채 집 안으로 들어선 루퍼스가 실소했다. 눈 안에 들어찬 광경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차라리 암살자가 숨죽이고 있다는 전개가 익숙할 지경이었다.

 

 

 

실내로 발을 내딛는 순간 따뜻한 공기가 얼어붙은 몸을 녹였다. 타닥거리는 나무를 태우는 소리는 커다란 벽난로에서 나는 것이었다. 여지껏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소박한 식탁은 이것 좀 보라며 제 몸을 넘어서는 근사한 식사를 얹은 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이 정도로 성대한 음식이 차려져 있는데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조치가 취해졌음을 의미했다. 재주 많은 보라색의 머리칼을 가진 꼬마 마법사가 머릿속을 스쳤다.

 

 

 

근 몇 백 년 간, 아니 인생을 통틀어 구경해본 적이 언젠지조차 가물가물한 케이크가 식탁 정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받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한 반짝이는 금가루가 생크림 위에 별빛처럼 얹어졌다. 루퍼스는 아이투스를 포켓 안으로 밀어 넣으며 식탁으로 다가갔다. 음식에는 보존 마법이 걸려있는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이 역시 아르메의 작품일 것이 분명했다.

 

 

 

 

 

'루퍼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 생일 축하한단다.'

 

 

 

 

 

얼핏 어머니와 함께 했던 소박한 생일파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묘한 향수에 루퍼스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인생에서 탄생이란 그에게 그다지 큰 사건이 아니었다. 태어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지만, 축복할 만한 일이라고 여긴 적도 없었다. 어머니가 몸져누울 즈음은 저런 달디 단 빵 덩어리보다 약을 사는 일이 훨씬 합리적이었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젓는 작은 아들을 보던 어머니의 눈매는 힘없이 쳐져 있었다. 그랬던 어린 아이는 여전히 단 것을 즐기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오래된 상념을 지우며 루퍼스가 케잌 옆에 자리한 카드를 발견했다. 그 카드를 들어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음식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이 소소한 장면들을 위해 이중 삼중으로 준비했을 모습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터졌다. 이런 세심한 작업들은 리르 에류엘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일 것이다. 코를 찌르는 강렬한 음식 냄새를 뒤로하고 루퍼스가 새하얀 카드에 시선을 주었다.

 

 

 

 

 

다섯 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명계열차 시간이 급해서 먼저 가볼게. 내일 임무만 아니었으면 끝까지 기다렸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네. 서프라이즈 하려다 반쯤 실패한 느낌이지만 네가 마음에 들어 해줬으면 좋겠어.

 

「돈도 많이 벌면서 좋은 데 좀 살아라. 집 찾아오느라 힘들어 죽을 뻔.」

 

「명계의 겨울이 이렇게 추울 줄 몰랐어요. 항상 건강 유의하시고 에르나스에서 봬요.」

 

「평소 입맛에 맞아하시던 것 위주로 준비해봤는데, 이번에도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시스의 정갈한 필체를 중심으로 짤막한 문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중간중간 삐딱한 문장들이 눈에 스쳤지만 싫은 표정을 왁왁 지으면서도 글씨를 휘날렸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겁 없이 자신의 집에 찾아든 그랜드체이스에 전혀 화가 나지 않는 다는 점이 스스로도 당황스러우리 만치 놀라웠다. 이 대담한 놈들은 명계가 소풍 나오듯 왕래할 수 있는 옆 동네 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런 생일 축하 따위를 하러 올 목적으로 방문할 만한 곳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리 생각하면서도, 루퍼스의 표정에서 불쾌한 감정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눈으로 축하 카드를 읽어내린 루퍼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지막 문장을 소리내어 읽었다.

 

 

 

"'생일 축하해, 루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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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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